B-side

#3 [B-side] 믿음을 깨고 찾아낸 것들

DeOpt 2021. 12. 4. 18:00

믿음을 깨고 찾아낸 것들

 

D. Vincent님의 좌우명을 소개 부탁드려요.

‘후회하지 말자, 후회되게 하지 말자’입니다. 사람이 후회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후회하지 말자는 건 후회를 하더라도 그걸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없다면 의미 없이 후회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후회되게 하지 말자는 건, 이 순간을 미래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날이 되도록 만들지 말자는 의미예요.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D.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할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현재에 대해서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신 게 어떻게 보면 반대되는 이야기처럼 들려요.

반대라고 표현해 주셨는데, 사실 저는 반대라기보다는 관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내일의 과거고, 항상 오늘 다음에는 내일이 있는 법이잖아요. 어느 날 하루를 잘 살아도 내일이 되면 저는 또 어떻게든 후회할 거리를 찾아내더라고요. 그래야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또 오늘을 살 때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이런 마음이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결국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D. Vincent님의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후회되는 일은 너무 많아요. 제가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정말 안 했어요. 하기 싫고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을 못 했거든요.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가장 후회됩니다. 공부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못내 아쉬워요.



 

D. '후회하지 않고 싶다'는 가치관은 원래부터 갖고 계셨던 건가요?

원래부터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사실 저는 종교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저희 집안에서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르면 저의 행동이나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제가 아닌 '신'이라는 존재가 지게 돼요. 학생 때는 이걸 제가 뭘 해도 결과는 신이 정한 대로 정해져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지금 와서 보면 왜곡된 이해였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이런 생각으로 인해 노력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쌓을 수 없었죠.



 

D.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지금의 가치관을 갖게 된 건가요?

말씀드렸다시피 학생 시절에는 노력할 이유를 찾지 못하다 보니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재수를 하게 됐고, 그때 제가 믿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 봤습니다. 그동안 교리를 따름으로써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 번 여태까지 제가 믿었던 걸 모두 부정해 봤어요. 그렇게 바꿔본 생각이 제 사고관과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때 종교를 믿는 걸 그만두겠다고 결정했습니다.



 

D. 가치관을 바꾸고 난 뒤의 자신은 어땠나요?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오늘 제가 한 행동이 100% 저의 책임이자 권리가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저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공부든 노력이든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됐습니다.



 

ⓒDeOpt

 

 

 

D. 굉장히 깊은 고민의 과정까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면 Vincent님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이야말로 제가 그리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비싼 원자재라고 생각해요. 돈으로도, 고통으로도, 즐거움으로도 바꿀 수 있죠.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려면 시간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을 잃을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이 시간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편이에요. 이렇게 하다 보니 쓸데없는 일에는 시간을 잘 못 쓰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시간을 초 단위로 따지지는 않아요. 그건 오히려 더 불행하게 시간을 쓰는 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을 풍성하게 쓰려 하면서도 시간이 나를 끌고 가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D. 시간을 가치 있게 쓰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지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Vincent 님은 반대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시간도 가져보셨나요?

사실은 목적 없이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는 거거든요.

군 입대 전에 대학원에 가려다 못 가고 입대까지 8~10개월 정도 시간이 뜬 적이 있었어요. 게임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보내니 처음에는 재미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에 있어서 내팽개쳐진 느낌이 들었어요.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괴로웠고요. 시간에 목적성을 부여하며 사는 게 저에게는 행복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 사이사이에 목적 없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저에게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안 것 같아요.



 

D. 시간이 쌓인 후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나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든지?

어른이라고 말씀하시니 나잇값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네요. 계속해서 시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시간을 많이 써서 나이가 든 만큼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D.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지혜는 ‘사람이 옳은 선택을 하는 방법 중에서 지식으로 풀이되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자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개념이 지식화되고 나면 그다음에 수식이 되거든요. ‘식’은 도구화된 지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혜는 ‘식’이 되기 전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았지만 인간이 경험이나 직관에 의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이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무형의 가치를 많이 가진 사람이 되겠죠.



 

D. 인터뷰를 마치며 처음에 드린 질문을 다시 한번 드릴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 질문을 예전에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책임의 멍에에 매여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지금은 그보다 ‘책임감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살아가며 받는 고통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지혜 얘기를 덧붙이자면 현재의 저는 책임감 있는 사람, 미래의 저는 지혜로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