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ide

#7 [B-side] 나와 친해지기

DeOpt 2022. 4. 3. 18:00

나와 친해지기



#Values

D. 요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가요?
'실제의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가 다르다는 것을 근래에 들어와 처음 깨달았어요. 저는 언제나 제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저도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채찍질했고요. 아파서 입원했을 때조차 공부할 것과 읽을 책의 리스트를 만들 정도였거든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요즘 느낍니다.



D.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 입학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재수를 했는데도 제 기준에 만족스러운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어릴 때 저는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공부 잘하고 선생님께 예쁨 받는 아이였어요. 학교에서 거는 기대가 있었고, 집에서 첫째이다 보니 부모님의 기대도 있었죠. 저는 그 기대가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재수를 해서 남들보다 출발선이 늦어졌다는 조급함이 있던 데다 1차 관문이었던 '좋은 학교'라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다 보니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생긴 것 같아요.



D. 그런 인정 욕구가 이후 다슬님의 삶에서 여러 선택에 영향을 미친 거군요.
맞아요. 간판 좋은 일본 대기업에서 퇴사한 다음 일본계 스타트업의 한국 마켓 총책임자로 일했던 것도 제 스스로 타이틀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어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엔 병원에 실려갈 만큼 번아웃이 와서 퇴사하게 됐죠. 처음에는 나약한 저를 탓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아니다 싶을 때 적당히 끊을 줄 아는 게 저를 지키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았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워요.

ⓒDeOpt


D. 그렇다면 앞으로는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일에 제 모든 것을 쏟아붓기보다 일찍 퇴근해서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거예요. 소소해서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일의 비중이 커지면 놓치기 쉽더라고요. 이런 소소함이 제게는 행복이에요.
또, 행복의 기준을 현재에 두려 해요. ‘좋은 회사에 가면 행복해질 거야’, ‘타이틀을 만들면 행복해질 거야’ 하며 그 기준을 미래에 두기보다는 현재의 저 자신에게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D. 5월에 이직을 앞두고 현재 쉬고 계신데,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정비하는 기간으로 보내실 것 같아요. 이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일단은 아무 걱정 없이 완전히 쉬는 경험을 하고 싶어요. 더 이상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지 않고 그냥 다 내려놓고 쉬는 거요. 잠만 잘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겠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고요. 잘 쉬는 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아서 알고 싶어요. 잠시 쉬고 나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겠죠.


#Vision


D. 앞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꿈이라 말해주셨어요. (A-side 참고) 꿈을 이루게 된다면 그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건 사실 처음인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푹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몸을 기대어 쉴 수 있는 빈백이 있다거나 호텔이라면 정말 편안한 침구류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만약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분이 오신다면 공간 한쪽에 그 작업물을 공유하는 식으로 누구나 자기만의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방명록 같은 걸 만들어서 다녀가신 분들의 흔적이 남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DeOpt



D. 그 공간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나요?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도쿄 에어비앤비에서의 경험이 제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처럼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줘도 좋을 것 같아요. 편히 쉬는 공간이 되기도, 걱정을 풀어가는 공간이 되기도 할 거예요.


D. 그 공간에서 다슬님은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자유로운 소통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호스트가 되고 싶어요. 낯선 공간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말을 걸기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 있잖아요. 제게는 모르는 걸 편하게 묻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D. 다슬님의 꿈과 생각이 담길 공간이 기대돼요.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처음에 드린 질문을 다시 한번 드려볼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를 어떠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참 어려워요. 제가 생각하는 저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것에는 누구보다 깊게 파고들면서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에는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의사 결정이 빠르지만 동시에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에요. 제 마음에 참 솔직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런 조각이 합쳐 저라는 사람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정의를 해 보자면, 어느 작가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말했 듯 조금 힘을 빼고 나만의 속도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