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ide

#8 [B-side] 인생의 하프타임에서

DeOpt 2022. 5. 8. 18:00

#Values #VIsion

인생의 하프타임에서

 

 

D. 병익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된다.’입니다.

어디선가 본 글인데 굉장히 와닿는 글이에요. 우리는 누군가를 보며 ‘나도 저런 삶을 사는 사람이 될 거야’라며 꿈을 꾸잖아요. 말 그대로 저도 만약 꿈을 이루면 누군가의 꿈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D. 그 꿈은 커리어와 관련된 것인가요?

커리어와 관련됐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꿈이에요. 제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거든요. 좋은 사람은 정확한 타이밍에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표현이 아니라 정확히 저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땡큐” 같은 말과 사전적으로는 동일한 의미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분명 느낌과 의미가 다르거든요. 굉장히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스스로도 아직 그런 사람이 되기엔 역부족이라,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D. 평소에 진정성이 담긴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그런 편이에요. 조금 어렸을 때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진정성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기도 했어요.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직접적으로 얘기해 주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착각한 거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유해졌고 생각도 바뀌어서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려 노력해요. 그래서 이제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얘기를 잘 하지 않아요. 살아온 상황 자체가 다르니까요. 제가 또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하고 깊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삶의 방식에 불과하더라고요. 

 

 

D. 혹시 주변에 병익님을 롤 모델이라 말해주는 사람이 있나요?

직접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어요. 혹시 저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팀원들에게 제게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걸 배우라고 말하긴 해요. 좋은 부분만이 아니라 안 좋은 부분까지도요. 좋은 부분에 대해 배우고 따라 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좋지 않은 부분을 따라 하지 않는 게 어렵죠. 가끔 퇴사자로부터 이러이러해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긴 하는데, 그렇다고 제가 그들의 롤 모델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해요.

 

ⓒDeOpt

 

D. 인터뷰 초반에(A-side 참고) 최근의 관심사가 ‘인생의 전반전 마무리와 후반전 준비’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병익님 인생의 전반전은 어땠나요?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굳이’인 것 같아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대학에 다니면 보통 과외와 같이 편하게 돈을 벌 기회가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굳이’ 갈빗집 아르바이트나 대리운전, 발레파킹, 호텔 벨보이 같은 일을 많이 했어요. 대기업에 입사해서 돈을 벌다가도 ‘굳이’ 퇴사하고 돈을 내며 대학원에 다녔죠. 스타트업에 다니던 중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제안이 오기도 했지만 ‘굳이’ 스타트업에 남는 것을 선택했고요. 그렇게 선택한 회사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제가 아무리 자존감이 높고 멘탈이 강하더라도 스스로를 자책하게 돼서 힘들더라고요. 그때 우울증 초기까지 갔지만 지금은 극복했어요.

 

 

D. ‘굳이’ 그런 선택들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그냥 허세였어요. 20대 때는 앱 서비스를 하나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카페나 식당을 많이 다녀서 알았는데, 그것도 아는 척, 잘난 척을 하기 위함이었어요. 각종 아르바이트를 통해 열심히 번 돈을 그런 데에다 쓴 것도 일종의 허세였죠.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던 거예요.(웃음)

 

 

D. 그런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나요?

아니요. 허세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층층이 쌓고 나니 어느 순간 취향이자 안목이 생겼어요. 그리고 30대 중반 즈음부터는 그런 경험들이 삶에 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가 돈, 건강, 안목이고, 그중 가장 얻기 힘든 게 안목’이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 있어요. 20대 때 클래식 공연장에 가서 졸며 앉아 있었고, 미술관에 가서 ‘저런 추상화는 나도 그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덕에 지금은 클래식이나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무리 없이 대화할 수 있죠. 그러니까 ‘불손한 의도로 시작한 긍정적인 결과’예요.

 

 

D. 결국엔 많은 경험치가 지금의 병익님을 만들었네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클림트의 <키스(The Kiss)>를 실제로 본 적 있는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뻔했어요. 지금까지 미술관을 다니며 쌓인 경험들이 그 작품의 진가를 느끼게끔 해준 거죠. 그 강렬한 경험을 해보니 제가 해온 수많은 경험이 정말 값진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자율적으로 수트 입고 다니는 아저씨 ⓒDeOpt

 

D. 후반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나 목표는 어떤가요?

하고 싶은 일을 의지 부족 때문에 못 하는 경우는 없길 바라요. 물리적, 금전적인 외부 환경에 의해 못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가 게을러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경우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그런 물리적인 장애물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분명 노화가 진행되며 언젠가는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고, 배도 나오게 될 거예요. 하지만 항상 책을 읽고 굳이 슈트를 입고 다니는 건 그런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함이에요.

 

 

D. 병익님의 후반전도 기대가 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처음에 드린 질문을 다시 한번 드려볼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더럽히는 사람이요.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뭐 하냐고 말하지만, 그렇게 바위가 정말 더러워지면 결국엔 치울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느끼기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계속해서 더럽힐 거예요. 그리고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최대한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