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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side] 스타트업 8년 차가 쌓아올린 경험치

DeOpt 2022. 4. 24. 18:00


#Work&Career #Health&Life

스타트업 8년 차가 쌓아올린 경험치

 

양말에 진심인 아저씨



D.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트업에서 PO(Product Owner)로 일하고 있는 윤병익입니다. 경력은 총 16년 정도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들어온 지는 8년 정도 됐습니다. 그간 거쳐온 스타트업은 모두 창업하고 나서 약 1년을 넘기지 못했어요. 직접 창업한 건 아니고 초기 멤버로 참여한 거지만 계속해서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생의 전반전 마무리와 후반전 준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120살까지도 살게 될 텐데, 그러면 55~60살 정도가 삶의 중간 지점일 거잖아요. 그 즈음에 지금 제가 밟아가고 있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는 목표로 일하고 있어요.


D.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꽤 오래되셨는데,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타트업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규모가 꽤 큰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습니다. 스타트업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저의 업무 성향과 잘 맞을 것이라 생각해서예요. 저는 꼭 제가 속한 부서의 일이 아니더라도 타 부서의 일에도 관심을 갖는 타입이었어요. 규모가 큰 회사는 체계가 분명했기 때문에 저의 일하는 방식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죠. 마침 그때쯤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미국 스타트업의 모습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저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 몸담아 보니 수평적인 업무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탈 부서로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은 잘 맞아요.

 


D. PO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려요.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의 준말인데, 프로덕트를 중심으로 기획, 디자인, 개발,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역할이에요. 프로덕트에 대해서는 대표보다 잘 알아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실무자와 C레벨*이 사용하는 언어는 각각 매우 달라요. P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각자 다르게 사용하는 언어를 조정해서 서로의 이해도를 맞추는 겁니다. 또, 경영진과 싸우는 것도 PO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예요.(웃음) 경영진이 실무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게 되면 실무의 방향이 갑자기 틀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PO가 그 사이에서 조율을 하죠. 이 외에도 매우 많은 역할을 합니다.


* C레벨은 CEO, COO, CFO 등 기업의 경영진을 뜻하는 통칭이다.



D. PO가 맡은 역할이 많은 만큼 조직 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PO로서 병익님이 특별히 고민 또는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스타트업은 워낙 연약한 조직이기 때문에 언제 잘못될지 모르는 게 현실이에요. 그들이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저 연차 치고 일을 곧잘 하네’라는 평가를 듣게 하고 싶어요.

 

ⓒDeOpt


D. 연차가 쌓이며 후배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 걸까요?
누구나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반드시 책임감이 정비례하지는 않아요. 시도를 해봤는데 후배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거나 ‘내가 말한들 듣겠어?’하며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죠. 이런 경우 후배들이 실제로 잘 못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선배들이 전달을 잘 못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업무 지시도 10년 차에게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다는 가정 하에 해도 되지만, 3년 차에게는 그런 가정 없이 충분히 설명해 줘야 하거든요.


D.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의 영향도 있었나요?
그럼요. 어떤 실수는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니까요. 후배가 중요한 일의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하는 실수가 생겼다고 가정해 볼게요.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한 사람의 책임은 6이고 나머지 4는 데드라인을 정해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일을 던졌으면 끝이 아니라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도 역할이거든요.

 


D. PO로서가 아니라 병익님 본인을 위해 일을 하며 고민 또는 노력하는 부분은 있나요?
사람들이 소위 얘기하는 워라밸을 저는 다른 형태로 쓰고 있어요. 일을 일로만 하고 일에 대한 고민을 가능하면 사무실 바깥으로 가지고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처음 다닌 회사의 본부장님이 굉장히 일찍 출근하고 칼같이 퇴근하는 분이었어요. 업무 시간이 아닐 때는 메일 한 통도 보내지 않으셨고, 회식 때 ‘아내랑 놀아야 하니 먼저 간다’며 술도 안 드시고는 카드만 던지고 가셨죠. 저는 그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당시에는 사람들이 워라밸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리더를 만나 본보기로 삼게 된 거예요.


D. 바쁘게 돌아가는 스타트업의 결정권자 위치에서 워라밸을 지키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쉽지 않죠. 저도 의식적으로 5~6년 정도 노력하고 나서야 일을 일로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워라밸은 피상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일과 일이 아닌 내 삶의 명확한 경계선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퇴근하고 나면 회사 사람들과 저녁도 안 먹습니다. 팀원들에게 퇴근 이후에 저를 만나면 모르는 척하라고 해요.(웃음)
퇴근 후에는 규칙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중 하나가 꾸준히 운동 ’가기’예요. 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일주일에 4~5일은 열심히 ‘가요’. 스스로 처음부터 부담을 주기보다는 지속적인 루틴을 만들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죠. 제가 주변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하는 잔소리 첫 번째가 연애를 하라는 거고, 두 번째가 운동을 가라는 거예요. 이 두 가지는 다른 것들로 대체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에 꼭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DeOpt

 

D.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목표는 ‘오래도록 번창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간 거쳐온 여러 회사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망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겠거든요. 두 번째 목표는 4월에 시리즈 A* 투자가 마무리될 거라 2년 안에 시리즈 B까지 만드는 겁니다. 저는 시리즈 A 투자를 얻어냈고, 시리즈 A에서 B로 이끌어도 봤지만 시리즈 B를 마무리 지어본 경험은 아직 없어요. 결과와 과정, 이 둘의 중요도를 평가한다고 했을 때 결과가 49, 과정이 51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때로는 극명하게 보이는 결과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저는 앞으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해보고 싶은데, 그럴 때 제가 쌓아온 결과물이 말과 글에 힘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스타트업의 투자는 창업 후 시드 투자(Seed) - 시리즈 A - 시리즈 B - 시리즈 C…와 같은 단계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보통 정식 서비스 출시를 위해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이후 진행될수록 스타트업은 외형적 성장을 이룬다. [출처: 브런치 @jaeschoen]



D. 궁극적인 커리어 목표도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는 스타트업이 번창한다면 투자 사이드로 전향하거나 초기 창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되고 싶어요. 현재 스타트업과 관련된 에세이를 온라인에 꾸준히 올리고 있고, 개인적으로 소설도 쓰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차후에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연도 하고 싶어요.

 


(B-side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