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12 [A-side] 나를 살리는 미술 작업

DeOpt 2022. 7. 31. 18:00

#Art&Culture #Health&Life

나를 살리는 미술 작업


D.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독일에 살고 있고, 10월에 독일 현지의 미술 대학 입학 예정인 유학생 박서정입니다. 한국에서 미술 회화 전공으로 석사 과정까지 밟은 뒤 부족함을 느끼고 33살의 나이에 독일에서 새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림 회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직업을 작가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D.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궁금해요.
주로 무의식이나 꿈에 관련된 미술 작업을 해왔어요. 개개인이 지닌 트라우마가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 괴롭히기도 하고 무의식에 잠재돼있다가 어떤 상황에 의해 문제로 발현되기도 하죠.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 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D. 트라우마를 작업의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난치병을 앓아서 몸이 많이 아팠어요. 어린아이가 이렇게 불가피한 일들을 겪으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잖아요. 아직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요. 그 당시의 저도 나약하고 미숙했기에 제가 겪은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게 저라는 개인에게 트라우마가 된 경험이라면 집단이 함께 트라우마를 얻게 되는 경험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나 비행기 추락 사고 등이요. 이런 사건을 직접 맞닥뜨린 당사자뿐 아니라 바깥에서 바라본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을 토대로 겪는 아픔까지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D.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릴 적 몸이 아프다 보니 병원이나 집에서 오래 생활했는데, 아버지께서도 회화 작업을 하시는 분이라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림 도구가 많았어요. 그림을 그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거죠. 그 덕에 자연스럽게 그림이 감정 표현의 창이 됐고, 창작 활동이 좋아서 대학에 가며 본격적으로 전공을 하게 됐어요.

Der Nachtspaziergang(밤산책), oil on Paper, 2021 ⓒ박서정


D. 미술 작품 창작 활동은 서정님에게 어떤 가치와 보람을 안겨주나요?
창작 활동은 제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줘요. 실은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해온 건 아니에요. 정신적·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해 여러 힘든 일로 인해 창작을 못 한 시간이 많았죠. 석사 과정을 마치고는 회사에 취직해서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어요. 그 당시 돈을 버니까 생활은 되는데 창작의 끈을 놓아버리기가 무섭고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작업실만큼은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미술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갔죠.
그런 시간 동안 창작을 이어나가야 할지,
어나간다면 어떻게 재정을 충당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모든 시간을 지나 보낸 뒤 창작이 제게 가장 큰 가치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제가 그 덕에 계속 살아왔으니까요. 저를 살리는 이 활동을 다시 시작해 보고자 독일 미대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D. 새 시작을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 단순한데요. 독일 대학은 등록금이 없어요.(웃음) 이게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고 독일에 동시대적인 작업물이 매우 많고 다양하다는 점이 그다음이었어요. 사람들은 소위 예술의 나라는 프랑스라고 생각하는데, 프랑스는 고전 미술에 특화돼있어요. 예술 작업을 하기에는 미국도 좋지만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고요. 독일이 미술계에서는 ‘전체를 아우르는’ 특징을 가졌다고 생각해서 독일행을 택했어요.


D. 그간의 창작물 중 가장 소중한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딱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독일 미대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포트폴리오가 가장 소중해요. 만약 이게 없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거고, 저는 창작을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작품은 <Der Nachtspaziergang>이에요.
(아래 이미지) 밤거리를 산책하며 그린 작품인데, 창작의 방향성을 다시금 가다듬는 '시작'의 의미가 담긴 작품이거든요.

 

Der Nachtspaziergang(밤산책), oil on Paper, 2021 ⓒ박서정


D. 방금 말씀하신 그 시점에 창작의 방향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나요?
작가들이 작업을 할 때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걸 전달
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 뒤 어느 순간부터 작업이 변질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층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방향성을 잃은 거였죠.
그 즈음 독일 미대 진학용 포트폴리오 제작을 도와주시는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과 창작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까지도 솔직하게요. 그때 제 지난 작업 방식을 반성하
서 위기를 타파할 수 있었어요. 대학에서 다시 연구의 깊이를 더하며 이어나갈 앞으로의 창작 활동이 정말 기대되는 요즘이에요.



(B-side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