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ide

#12 [B-side] 서른 살, 다시 살다

DeOpt 2022. 8. 7. 18:30

#Age #Values #Vision

서른 살, 다시 살다

(A-side와 이어집니다.)



D. 한국 나이로 33살인 지금 독일에서 대학생으로 새 출발을 앞두고 계신데요. 새 출발에 앞서 ‘나이’라는 요소가 고민거리가 되기도 했나요?
네. 신경 쓰려 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나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이런 것들이요. 제 친구들도 대부분 번듯한 직장이 있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독일로 넘어왔어요. 어쩌면 인생의 마라톤에서 열외 되기를 선택한 거죠. 태생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사람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D.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한 적 있나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거나 주변 사람과 비교하게 될 때는 흔들리기도 해요. 내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의심하게 되죠. 그런데 언제나 결론은 ‘후회하지 않는다’예요. 독일에 오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저 다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20대 초중반까지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팠어요. 신체적인 아픔을 회복하고 나니 정신적인 아픔이 또 몇 년을 갉아먹었고요. 제가 독일에 오기로 마음먹은 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고 독일에 온 지는 2년이 됐는데, 이제야 제 인생을 살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저는 아직 3살이에요.(웃음)


D. 서정님이 느끼기에 독일 사회와 한국 사회의 나이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겪은 바에 의하면 독일 사람들은 나이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사람을 사귈 때 “안녕하세요.” 다음에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곤 하는데, 여기에서 만난 사람 그 누구도 나이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아마도 제가 20대이든지 30대이든지 개의치 않는 듯해요. 이런 분위기가 나이에 대한 불안함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D. 만약 독일행을 택하지 않고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까요?
한국에 있었다면 무엇보다 창작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작업 자체는 아주 행복했지만 유리천장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겪으며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석사 과정까지 밟으면서도 특출난 재능이 있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 창작자로서 먹고살기는 힘들겠다 싶었거든요. 이런 한계 때문에 독일로 떠나온 것도 있어요.


ⓒDeOpt


그런데 막상 독일에 오니 또 이곳만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인종 차별도 당해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어려움도 겪어보며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제가 겪는 문제가 한국 사회 탓이라는 경솔한 생각도 했는데, 이제는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으니 어디에 있든지 마음이 건강하고 풍족하면 그곳이 유토피아다’라고 생각해요. 만약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한국에 돌아간다면 떠나오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D. 서정님이 생각하는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잠을 잘 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요. 사람이 누구나 무너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아파하는 시간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 너무 후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면 그게 건강한 삶이 아닐까 해요. 나아가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고 싶어요.


ⓒDeOpt


D. 사전 인터뷰에서 ‘삶 전체가 두렵지만, 두려움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신 게 인상 깊었어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인 단어는 부정적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친구와 원동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를 살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불안이었어요. 불안하니까 돈을 벌고 계획을 세우면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것들도 생각을 환기해 본다면 늘 부정적인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게 이런 식으로 제 생각을 바꿔준 것 같아요.


D. 독일에서의 생활이 서정님을 여러모로 건강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제 세 달 뒤면 독일에 온 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되는데, 새로이 시작하며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10년 전의 대학 생활에서 놓친 게 너무 많아서, 그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목표예요. 공모전과 같이 제 작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게 특히 아쉬워요. 이제 10년을 건너뛰어 똑같은 위치에서 다시 시작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작업도 많이 하겠지만 그걸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D. 마지막으로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드릴게요. 서정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그냥 현재를 사는, 현재를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20대 후반에는 마흔 살까지만 살아보고 만약에 정말 인생에 답이 없다면 마흔 살에 생을 내려놓자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게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 안에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고, 그 덕에 독일에 올 수 있었죠.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더 이상 마흔 살까지만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지금의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제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