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1 [A-side] 내가 대기업 입사를 포기한 이유

DeOpt 2021. 10. 10. 17:16

내가 대기업 입사를 포기한 이유

 

 

D.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디옵트의 첫번째 인터뷰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디옵트라는 미디어를 만든 이창훈이라고 합니다.🙆‍♂️ 제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한다는 것이 멋쩍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기 앞서 디옵트를 만든 저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을 시작한지 세 달쯤 되어가는 사회초년생입니다. 늘 브랜딩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 얼마 전부터 들어가고 싶던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어요.

 

 

 

D. 하고 싶은 일과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처음에는 막연히 브랜딩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브랜딩이 뭔지 사실 정확히 알지도 못했죠. 그래도 이후에 여러 경험과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BX 기획이라는 직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플러스엑스라는 브랜드에이전시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원하던 회사에서 원하던 직무를 맡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입사가 확정됐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요. ‘1차적인 성과를 이루었구나’ 싶었거든요.

 

 

 

D. 하지만 입사를 하자마자 다시 고민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에이전시 일이라는 게 내 회사, 내 브랜드가 아니라 다른 회사의 브랜드 경험을 기획하는 일이다보니까 생각보다 만족감이 낮더라고요. 처음에는 배가 부른 소리를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는 방식과 태도는 제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쓸 수 밖에 없고 일에서 얻는 행복과 만족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고 몰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분명 하고 싶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하우스냐, 에이전시냐' 하는 업의 형태에 따라 제 태도가 달라지는 걸 느끼면서 고민에 빠졌죠.

 

 

©DeOpt

 

 

D. 취업한지 세 달 정도 됐다고 하셨는데, 들어가자마자 또 고민이 생겼네요.

사실은 들어오기 전부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에이전시에서 일한 게 처음은 아니거든요. 다른 에이전시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업의 특성에서 비롯된 한계를 느꼈었어요. 그런데도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제가 옛날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브랜딩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회사예요. 그래서 ‘일단은 한 번 경험해보자’하고 들어오게 된 거죠.

 

 

 

D. 그러면 창훈님은 지금 ‘내 일’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해소하고 계세요? 예를 들어 일터에서 얻는 만족감이 100 중에 80이라면, 나머지 20은 어떻게 채우고 계시나요?

제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디옵트’요. 최근에 사이드 프로젝트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트렌드처럼 비춰지는데, 생각해보면 저는 학생 때부터 동아리 같은 활동을 다양하게 해왔어요. 그 버릇이 자연스럽게 트렌드와 만난 걸지도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에이전시 일을 하면서 채우지 못한 ‘내 것’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적어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할 수 있으니까 정말 즐겁게 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지인들과 서로 고민을 나누고 동기부여를 하는 모임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조언을 얻기도 해요.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갈증을 해소하고 있는 것 같아요.

 

 

 

D. 최근에 들은 조언 중 커리어와 관련해 가장 와 닿았던 조언이 있었을까요?

조언이라기보다 깨달음을 얻은 게 있어요. 저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한 3년쯤? 혹은 5년, 7년쯤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연차의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거예요. 이전 직장에서는 8년차인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4~5년차에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직무를 바꾸셨더라고요. 근데 이런 사례가 또 특이한 것도 아니었고요. ‘취업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라는 말을 사람들이 괜히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을 하는 이상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계속 가져가게 될 거라는 깨달음 덕에 위로 아닌 위로를 얻었어요.

 

 

 

©DeOpt

 

 

D. 말씀을 들어보니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해보신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지점을 거쳐 지금에 오게 됐는지 말씀해주신다면요?

군대를 전역한 다음 첫 회사로 BAT라는 브랜드 에이전시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에는 인터넷 강의 촬영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다음에는 전동 킥보드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을 했고, 세 번째 회사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이하 카엔)라는 B2B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됐어요. 지금 회사를 들어오기전의 얘기를 해보자면, 막학기였기 때문에 이제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이었어요. 처음에는 대부분 대기업도 고려를 하잖아요. 저도 생각하지 않을순 없었죠. 모두들 가고 싶어하고, 페이도 높은 편이니까.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으레 하는 일들이 있어요. 자기소개서, 인적성 시험공부, 면접 준비 같은 것이요. 이런 걸 빨리 경험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같이 구직활동을 했어요.

 

 

 

D. 그렇다면 처음에는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신거네요?

목표의 범주에 속해있었다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취업 유튜버가 있는 거 아세요? 저는 이런 분들이 있는 것도 몰랐는데, 같이 준비하는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됐어요. 한 유명한 취업 유튜버가 ‘대기업 자소서 따라쓰기’라고, 한 기업을 정해서 그 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에 어떤 식으로 답을 쓰면 좋을지를 분석해주는 강의를 해요. 저는 그걸 보다가 첫 회사로 ‘현대로보틱스’라는 곳을 분석해주길래 잘 모르는 곳이지만 시험삼아 제 케이스에 맞춰 서류를 내봤어요.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서류가 붙더라고요. 대기업 전형을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음 전형을 준비했는데 계속 합격을 하는 거죠.

 

 

 

D. 우연한 기회가 합격으로 이어졌네요. 하지만 입사를 결국 포기하신거죠?

심지어 그사이 카엔에서 인턴을 하면서도 계속 면접을 봤더니 결국 최종 합격까지 해버렸어요. 인턴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정말 고민을 많이 했죠. 요즘 시국에 취업도 어렵고, 붙은 곳은 대기업인데다가 전환형 인턴도 아닌 신입이라 안정적이었어요. 페이도 카엔보다 더 많이 줬을 거고요. 객관적으로 보면 가는 게 맞았죠.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요. 다만 가장 고민이었던 부분은 직무예요. 제가 지원한 직무가 영업이었거든요. 그나마 해온 마케팅 경험과 엮을 수 있어 쓰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목표했던 게 영업은 아니었거든요. 정말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입사 포기를 선택했어요.

 

 

 

D. 어찌 보면 위험하게 보일 정도로 과감한 선택이었는데,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든 고민을 했고, 결정도 몇 번을 바꿨어요. 이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주어진 일’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브랜딩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마케팅까지는 하고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겠지만, 영업은 전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거든요. 결정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죠. ‘지금 온 기회가 아쉬워서 영업 직무를 선택하면, 앞으로 올지 모르는 새로운 기회를 놓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요.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후회할 것 같다’는 답이 나왔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어요.

 

 

 

D. 그 결정을 통해 깨닫게 된 본인의 가치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고싶은 일은 해야하고,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기 싫은 제 가치관을 찾게 된 순간이죠. 물론 당장 현실적인 조건에서 가능한 옵션이었기에 이런 결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원치 않는 직무로 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해봤을 때, 영혼 없이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상상해본 뒤로는 간다고 못 하겠더라고요. 채용검진 한다고 피까지 뽑았는데 결국엔 안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마침 지금 다니는 회사의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붙게 됐어요. 여러모로 운이 참 좋던 것 같아요.

 

(B-side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