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2 [A-side] 한국, 독일, 그리고 영국 - 경계를 뛰어넘는 마케팅

DeOpt 2021. 10. 24. 18:00

한국, 독일, 그리고 영국 - 경계를 뛰어넘는 마케팅

 

D.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한국 나이 25살, 만으로 23살이며 11월에 24살이 되는 하나영입니다. 이렇게 나이 얘기를 길게 하는 건 제가 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2살부터 독일에서 쭉 살았어요.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 분이신데, 음악 공부로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셨다가 가정을 꾸리셨어요. 아버지는 성악가이시고, 어머니는 지휘를 하세요. 두 분의 영향으로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이나 예술을 가까이하며 살았습니다. 대학에서도 관련된 전공을 했는데, 지금은 영국 런던의 대학원에서 마케팅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 된 대학원생입니다.

 

 

 

 EDUCATION 

 

D. 우선 가장 최근인 대학원 진학 얘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어떤 계기로 대학원에 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원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의대에 가서 음악 치료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갭 이어*를 가지며 입학시험을 준비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죠. 결국 대학에서는 Music, Arts & Media: Organisation and Communication을 전공했습니다.

 

*갭 이어(gap year): 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 [출처: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D. 처음 목표와는 다른 전공을 선택하게 됐는데요. 그곳에서 마케팅이라는 길을 찾게 된건가요?

처음에는 대학 전공 프로그램에 실망도 했어요. 공연 기획이나 작곡과 같은 실용적인 예술 활동 위주일 거라 생각했는데, 에세이나 논문과 같은 학술적인 글쓰기 위주였거든요. ‘모든 이론은 실전에 가는 좋은 베이스다.’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실기 과목에서 영어 페스티벌이나 연주회 같은 공연을 기획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한인 학생회와 같은 대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오히려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흥미가 생겼어요. 저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대학시절 재미를 느끼는 것들을 모아보니 그게 곧 마케팅이었고 대학원에서 좀 더 공부해봐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DeOpt

 

D. 오히려 대학시절의 경험에서 새로운 흥미 분야를 발견하신 거군요. 그런데 아무리 마케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해도 대학원에서 새로운 전공을 시작하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사실 마케팅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또 다른 계기는 제 신앙생활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외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교회에 다니는데, 노래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대학교 2~3학년 때 독일의 여러 도시를 찾아다니며 길거리에서 찬양 활동을 했어요. 각 도시에 있는 교회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어요.

 

 

 

D. 그 이후 교회에 다니는 현지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네, 바로 Project Dandelion(PD, 프로젝트 민들레)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찬양팀이나 댄서 등 기독교 문화인들의 활동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알리는 활동이에요. 그때 인스타그램, 랜딩페이지, 유튜브 채널 관리 같은 디지털 마케팅을 담당했죠. 이후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에 갔을 때에도 한국 학생회에서 마케팅과 소셜미디어 분야를 담당했고요. 마케팅을 경험해 보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좋아하고, 함께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들의 행복이 제 행복이 된 것만 같은 기쁨도 있었고요. 가치를 전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디자인, 기획까지도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D. 신앙생활을 통해 생각한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는 신념이 마케팅과 연결된 거네요. 

그런 셈이죠. 더불어 앞서 소개해드린 저희 가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음악 공연 기획사를 하고 계시는데, 가까이서 지켜보며 마케팅의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공연은 좋은 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마음의 울림이나 재미를 찾는 활동이잖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좋은 공연이 있는 걸 모른다면 그 경험조차 하지 못하게 되죠.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SOCIETY 

 

D. 그렇다면 계속해서 살아온 독일이 아닌 영국의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독일 대학원에서 마케팅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학점이 필요했는데 제 대학 전공에서 경제학 수업은 없었어요. 반면 영국 대학원에서는 경제학 학점을 요구하지 않았고, CV(Curriculum Vitae, 이력서)를 통해 제 열정을 보여주면 되는 거였죠. 영국 대학원을 나오면 취업이 잘 된다는 친구의 속삭임도 결정에 한몫했고요.(웃음) 또, 평생 독일에 살다 보니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우물 안 개구리 같달까요?

 

 

 

©DeOpt

 

 

 

D. 한국 사람들 중에는 국내에만 있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나영 님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요?

저는 사실 제가 어디에 있는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스펙이나 성공을 위해서 외국에 나간 게 아니라 그냥 시야를 넓히고 싶었어요. 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런던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인 것도 영국 대학원을 선택한 큰 이유예요.

 

 

 

D.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독일에 살면서 독일 사람들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딱딱하고 재미없는 편이라 느꼈어요.(웃음) 그게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는 거죠.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유쾌하잖아요. 반면 독일 사람들은 건조한 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독일에서는 제가 어떤 말을 하면 여기에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답하거든요. A를 말하면 B로 답하니까 결국 대화가 토론처럼 이어지죠. 아마 독일 교육방식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쉽게 말해 한국처럼 ‘티키타카’가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매번 이런 식의 대화를 하는 건 재미없다고 느껴졌어요. 이 세상에 한국과 독일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니 더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었습니다.

 

 

 

D. 말씀해주신 사례를 들어보니 오히려 독일보다 한국 문화에 더 큰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네, 저는 평생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독일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한인 교회에 다니며 한독 교포들과 평생 생활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스스로 독일의 문화를 잘 받아들인 한국인, 다시 말해 Korean German이라고 생각하게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D. 영국으로 대학원을 가기 전,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와 일 년동안 지내셨다고 들었어요.

최근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게 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한국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요. 한국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문화 차이가 존재하는 걸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한국 친구들과는 오히려 가벼운 이야기만 오랫동안 하면서 제 스스로 힘이 빠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각의 논리를 따지는 독일식 사고법과 자기 자신을 매번 정찰하며 솔직하게 대화하는 독일식 대화법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다만 제가 K-POP이나 드라마, 예능과 같은 한국 문화 콘텐츠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쩌면 한국 문화에 정서적으로 기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D. 이전에도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나요? 있다면 그때의 느낀 점이 궁금해요.

네, 어렸을 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갔고, 중학교 1학년 1학기는 잠깐 한국에서 다니기도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한국 드라마에서 보는 학교생활과 다르긴 했어요. 당시 왕따가 뭔지도 몰랐는데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왕따 문화가 있었어요. 저는 누구든 친하게 지내면 좋다는 생각으로 따돌림당하던 친구와도 잘 지냈는데, 그러다 미움을 받았어요. 그때는 학교에 가기 싫기도 했지만 물론 지금은 다 잘 극복했어요. 돌아보면 이 경험도 값진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을 해본 만큼 새롭게 만난 사람을 대할 때도 더 오픈 마인드로 다가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D. 그때와 최근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느낀 차이점이 있을까요?

서울에서 지내다 보니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자기개발과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덕에 얼떨결에 마케팅에 유용한 포토샵 자격증도 땄답니다.(웃음) 청소년과 성인으로서 각각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본 결과 한국 사회에서는 확실히 성인이 되면 더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서울에는 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탐구해 볼 곳도 많아서 좋았어요. 일은 바쁘지만 한국에서는 그 안에서도 열심히 각자의 재미 요소를 찾아 나서는 게 가장 흥미로웠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물들어 갔던 것 같네요. 

 

 

 

D. 마지막으로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는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환경을 받아들이는 사람 같아요. '국적'보다는 '문화'와 '사람'이 저에겐 중요하고, 앞으로도 이를 기반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지내고 싶어요.

 

(B-side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