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4 [A-side] '기획하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DeOpt 2021. 12. 18. 18:15

#Career

‘기획하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D.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디자인을 사랑하는 한국의 흔한 27살 한다원입니다. 현재는 브랜드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의 다양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디자인 영역을 하나로 규정짓기보다는 그냥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걸 좋아합니다.




D. 사전 인터뷰에서 하시는 일을 ‘브랜드에 맞게 옷을 입혀주는 일’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저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용어가 좀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요, 브랜딩이란 쉽게 말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에요. 사람으로 비유하면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거죠. 밥을 떠먹여주고 맞는 옷을 입혀주면서 이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유모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D. 그렇다면 말씀하신 ‘브랜드 디자인’이 곧 ‘브랜딩'인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브랜딩은 크게 ‘기획’과 ‘디자인’으로 일을 나눌 수 있는데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기획자와 함께 브랜드 전략을 완성한 다음, 브랜드에 맞는 색이나 그 브랜드에 어울릴 옷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는 웹, 팸플릿, 포스터, 오프라인 공간 등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옷을 입힌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D. 디자이너로서 기획까지 참여하는 것이 부담은 아닌지, 혹은 기획 업무도 본인에게 잘 맞는지 궁금해요.
저는 디자이너가 기획에 무조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획의 방향성과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채로 디자인을 하게 될 경우 기획자의 의도에 전혀 맞지 않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어요. 기획한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난 뒤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야 퍼즐 조각이 맞는 것처럼 연결성이 생길 수 있죠.



D.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기획부터 함께 참여하고 계신 편인가요?
그런 편이에요. 사실 저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툴러(tooler, 도구)로서만 활용되는 걸 원치 않아요. 이런 점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저와 생각이 맞아 입사하게 됐고요. 저희 회사는 다른 브랜딩 에이전시와 달리 한 명의 디자이너가 여러 업체를 지속해서 관리하고 있는데요, 그중 한 곳은 기획부터 패키지 디자인, 콘텐츠 제작까지 제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D. 주니어가 기획과 디자인 모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컨펌은 대표님께 받기 때문에 제 의도대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아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연차가 조금 더 쌓이고 권한이 늘어나다 보면 정말 ‘기획하는 디자이너’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D. 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디자인이나 미술을 하고 싶어 했는데, 사실 처음부터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재수를 통해 들어간 대학에서는 인테리어를 전공했거든요. 도면을 그리고 삼각자로 실측을 하는 일을 하면 정말로 머리가 지끈해져요. 가뜩이나 수학을 못하는데 문 각도까지 계산해야 하는 제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D. 충분히 힘들었을 상황인데요. 학교는 어땠나요?
학교 생활도 제 생각과는 너무 달랐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였죠. 조별 과제를 하면 저는 토론회 같은 장이 마련되길 바랐지만 현실은 저 혼자 고군분투하는 느낌이었어요. 교수님들의 심드렁한 반응도 싫었습니다.



D. 그 이후 다원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결국엔 그 학교를 그만두고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 학과 편입을 준비했어요. 대학교를 2년 다닌 사람들은 면접만 봐도 되는 전형이 있었거든요. 그 전형으로 다행히 편입에 성공했고, 졸업까지 남은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다녔어요.




D. 편입을 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네요.
네. 저에게 편입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싼 학비가 저의 발목을 잡았죠. 그러다 개인적인 어떤 계기(B-side에서 계속)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깊이 고민했어요. ‘나는 왜 항상 주도적으로 살지 못할까?’, ‘나는 왜 남들 말에 휩쓸릴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학교를 안 나오더라도 살 방법은 많다는 생각을 하니 용기가 조금 생겼어요.




D. 용기를 내어 마침내 원했던 디자이너의 길을 시작하게 되셨네요. 실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요.
여태 일한 기간을 합치면 2년 정도 되는데, 저는 아직도 제가 만든 디자인이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얼떨떨해요. 기분 좋은 설렘이죠. 누군가 제가 열심히 디자인한 결과물을 보고 상품을 구매한다거나, 제가 만든 웹사이트를 통해 담당한 업체의 매출이 오른다고 했을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물론 상사분들한테 잘 한다고 칭찬을 받을 때도 제가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기분 좋고요(웃음).




D. 그러면 반대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 가장 힘들어요.* 뇌를 걸레 짜듯이 짜려 해도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가 있어요. 심지어 아이디어 구상을 같이 논의할 사람 없이 혼자 하고 있으면 그 힘듦은 배가 돼요. 또, 제가 일하는 곳이 에이전시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들이 이상한 요구를 할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치과 원내 게시물에 빨간색을 써달라고 하는 경우죠. 치과 이미지에 빨간색이 있으면 피가 많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텐데 말이에요. 디자인 제안을 할 때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클라이언트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서 진행하는데도 디자인 결과물에 반대 의견을 주시면 힘들죠.


*에디터는 이 말을 볼드체로 적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는 후문이다.




D. 업무적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모든 걸 내려놔요. 포기합니다. 저는 일이 안 되는데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그저 피곤해져요. 이상한 비유일 수 있지만 화장실에서도 앉아만 있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전시회를 간다거나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일로부터 벗어날 시간을 줘요. 그러면 이상하게 퍼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책상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B-side에서 계속)